반응형

 

흔히 다윗하면 떠오르는 것들이 있다. 골리앗과의 싸움, 시편, 사울과의 관계, 다윗의 범죄. 그런데 다윗했을때 왕따가 떠오르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 같다.

 

하지만 알고보면 다윗은 참 왕따의 유년기를 보냈던 사람이다.

 

성경에 다윗이 맨처음 등장하는 것은 권별 순서로 볼때 룻기이기는 하지만, 그건 아마도 다윗이 이스라엘 왕이 되고 난 후에야 기록이 되었을 것을 생각해보면 시간순서로 볼 때 삼상 16장이 최초의 등장이다.

 

룻기 4장 22절 오벳은 이새를 낳고 이새는 다윗을 낳았더라 (성경은 개역개정4판을 사용했음)

 

그런데 여기에서 다윗의 등장은 참 왕따였던 그의 암울한 유년시절을 볼 수 있는 듯 하다.

 

사무엘상 16장을 보면 사무엘이 사울로 인해서 슬퍼하는 것을 하나님께서 책망하시면서 새로운 왕을 뽑기 위해 출발하라고 말씀을 하신다.

 

삼상16:1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내가 이미 사울을 버려 이스라엘 왕이 되지 못하게 하였거늘 네가 그를 위하여 언제까지 슬퍼하겠느냐 너는 뿔에 기름을 채워 가지고 가라 내가 너를 베들레헴 사람 이새에게로 보내리니 이는 내가 그의 아들 중에서 한 왕을 보았느니라 하시는지라


 

그리고 사무엘은 베들레헴 이새의 아들 중에서 한 사람을 왕으로 뽑기 위해 베들레헴으로 가게 된다.

 

삼상16:4 사무엘이 여호와의 말씀대로 행하여 베들레헴에 이르매 성읍 장로들이 떨며 그를 영접하여 이르되 평강을 위하여 오시나이까


 

부연설명이 필요없을 정도로 사무엘은 그 당시 이스라엘 안에서 가장 유명한 사람이었다. 비록 사울이 왕으로 뽑혀있는 상황이기는 하지만 이스라엘은 종교 중심의 국가였다. 그렇기에 사무엘이 가진 영향력은 이루말할 수 없을 정도다.

 

오죽하면 사무엘이 베들레헴에 도착하자 성읍의 지도자라고 할 수 있는 장로들이 떨면서 그를 영접했을까? 물론 뒤에 "평강을 위하여 오시나이까?"라는 말이 주는 의미를 따지고 갈 때 그들이 떠는 또 다른 구체적인 이유를 말할 수 있지만, 그렇게하면 이 글이 너무 길어지니 넘어가도록 하자!

 

 

아무튼 간에 사무엘은 그 당시 이스라엘에서 가장 유명한 인물이며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럼 생각해보자. 그런 사무엘이 이새의 가정에 제사를 청했다면, 이건 이새의 입장에서 볼 때 가문의 영광이라고 할 수 있다.

 

삼상16:5 이르되 평강을 위함이니라 내가 여호와께 제사하러 왔으니 스스로 성결하게 하고 와서 나와 함께 제사하자 하고 이새와 그의 아들들을 성결하게 하고 제사에 청하니라

 

 

오늘날로 말하면 같이 예배를 하자고 한 것이다. 비교가 적절할지 모르겠지만 교황이 이탈리아의 한 동네에 찾아가서 그 동네의 한 가장에게 가족들과 함께 예배하자고 초청을 한 것과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아버지인 이새로서 어떻게 할까? 당장 자녀들을 제사에 참여하도록 준비하는 것이 당연할 것이다.

 

그래서 이후의 장면을 보면 실제로 아버지인 이새는 자녀들을 준비시킨다. 그런데 우리가 잘 알다시피 이새의 여덟번째 아들인 다윗은 그 자리에 없었다.

 

이새가 아들이 여덟명이나 있었다는 것보다 놀라운 것은 이새가 막내아들을 제사에 참여하도록 부르지 않았다는 것이 놀라운 것이다.

 

삼상16: 10 이새가 그의 아들 일곱을 다 사무엘 앞으로 지나가게 하나 사무엘이 이새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이들을 택하지 아니하셨느니라 하고

11 또 사무엘이 이새에게 이르되 네 아들들이 다 여기 있느냐 이새가 이르되 아직 막내가 남았는데 그는 양을 지키나이다 사무엘이 이새에게 이르되 사람을 보내어 그를 데려오라 그가 여기 오기까지는 우리가 식사 자리에 앉지 아니하겠노라

 

그렇다면 이새는 왜 막내 아들을 부르지 않았던 걸까? 열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 없다고 하지만 그래도 대체적으로 집안에서 막내들이 받는 사랑을 생각해보면 막내 다윗이 가장 사랑 받을만하지 않을까?

 

그렇다면 혹시 다윗이 앓아 누워서 만찬 자리에 함께 할만 상황이 안 된것 아닌가? 혹시 다윗이 너무 갓난애기라서 예배 때 울고 기저귀 갈아줘야 하는 혼잡한 상황이 와 사무엘에게 피해가 될까와 그런 것은 아닌가? 혹시 다윗은 나는 교회가는 것 싫거든요. 라면서 신앙심이 전혀 없는 그런 사람이었던 걸까?

 

모두 아니다. 다윗이 아팠던 것도 아니고, 여호와 신앙이 없었던 것도 아니고, 너무 어려서 예배에 참석하면 방해만 되는 그런 아기도 아니었다.

 

그럼 다윗은 그때 다윗은 뭐하고 있었나?

 

다시 11절을 보면,

11 또 사무엘이 이새에게 이르되 네 아들들이 다 여기 있느냐 이새가 이르되 아직 막내가 남았는데 그는 양을 지키나이다 사무엘이 이새에게 이르되 사람을 보내어 그를 데려오라 그가 여기 오기까지는 우리가 식사 자리에 앉지 아니하겠노라

 

다윗이 현재 뭐하고 있었나? 맞다. 양 지키고 있었다. 다윗은 집안의 목축업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결국 이새가 다윗에게는 집안의 경제를 책임지도록 일을 시켜두고 나머지 아들과 함께 사무엘과 만찬을 가지겠다고 이러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런 질문을 던져볼수도 있다. 양을 누군가는 돌봐야 하는 상황이기에 어쩔수 없이 다윗이 그 짐을 떠맡은것이 아닌가라고 말이다.

 

삼상16: 11 또 사무엘이 이새에게 이르되 네 아들들이 다 여기 있느냐 이새가 이르되 아직 막내가 남았는데 그는 양을 지키나이다 사무엘이 이새에게 이르되 사람을 보내어 그를 데려오라 그가 여기 오기까지는 우리가 식사 자리에 앉지 아니하겠노라
12 이에 사람을 보내어 그를 데려오매 그의 빛이 붉고 눈이 빼어나고 얼굴이 아름답더라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이가 그니 일어나 기름을 부으라 하시는지라

 

하지만 성경을 읽어보면 사람을 보내서 양을 돌보는 것 걱정없이 다윗이 식사 자리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할 여건이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만약 그냥 일반 손님이었다면 누군가는 양을 돌보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자리에 불참했다는 것이 이해가 되지만, 충분히 사람을 보내서 그것이 해결될 여건이 되고 더구나 일반 손님도 아닌 사무엘이라는 것을 생각해보면 다윗이 그 자리에 빠진 것은 거의 명확하다. 왕따일뿐. (물론 성경은 삼상 16장을 통해서 왕따문제를 심각하게 말하진 않는다. 다만 다윗의 왕따모습이 보여질뿐이지)

 

물론 성경에서 이 장면은 완전수로 통해지는 7이라는 숫자로도 여호와의 마음에 합당한 자가 없었는데 과연 있겠는가?라는 문학적인 부분도 담겨져 있다. 그리고 그 해법으로 짜잔 나타나는 다윗의 모습이 있다.

 

하지만 상황적인 것을 볼 때 참 웃기지 않은가? 앞서서 교황의 이야기를 꺼내기도 했지만 이탈리아의 시골마을에 교황이 와서 한 가정에게 같이 미사를 드리고 식사시간을 가지겠다고 하면 그 가문의 영광이 아니겠는가? 그런데 거기에서 부모가 여건이 되면서도 한 자식을 빼놓는다면 이거야 말로 왕따 아니고 무엇일까?

 

뭐 그리 심각한 이야기가 아닐수도 있지만, 어쩌면 성경에서 왕따를 경험해본 것은 창세기의 요셉만이 아니라 다윗도 마찬가지인듯 싶다.

 

허나 이런 왕따로 인한 외로움이 오히려 다윗으로 하여금 하나님만 바라보도록 만드는 모습이 되었을테니, 다윗의 신데렐라와 같은 삶은 오히려 여호와 하나님만 바라보게 만드는 시간이 되지 않았을까 싶다.

 

그러나 다윗의 이러한 왕따로 인한 애정결핍의 모습이 이후에 사랑을 갈구하여 심지어 남의 아내까지 빼앗는 모습으로 발전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는 생기기도 한다. (실제로 그렇게 해석하는 사람도 있고 말이다.)

 

 

내용에 비해 제목이 너무 거창했던가? 재밌는 성경이야기는 말 그대로 성경을 보면 이런 이야기도 숨어져 있다라는 것을 말하기 위함이니 너무 따지진 말아주시길.

 

 https://story.kakao.com/ch/funbiblestory

재밌는 성경이야기는 카카오스토리를 통해서 구독할수 있습니다. 주변 분들에게 추천해주시면 좋아요.

반응형
Posted by paulandsaul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