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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가 고난주간이다. 고난 주간에는 교회들이 고난주간 특별새벽기도회를 하는 등 이 시간을 의미있게 보내려는 모습을 보인다. 고난주간을 깊이있게 말씀을 묵상하면서 의미있게 보내보는 것은 어떨까?

 

그래서 이번 재미있는 성경이야기는 고난주간에 있었던 성경의 사건들을 말하면서 예수님의 행적을 따라가보려고 한다.

 

월요일에 묵상해볼 본문

마가복음 11장 12-18절 (참고 마21:10-19 ; 19:45-48)

 

종려주일은 다들 알다시피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 성으로 입성하시는 예수님을 향해서 종려나무잎을 흔들며 사람들이 맞이했던 일을 말한다.

 

요한복음 12장

12 그 이튿날에는 명절에 온 큰 무리가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오신다는 것을 듣고

13. 종려나무 가지를 가지고 맞으러 나가 외치되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 곧 이스라엘의 왕이시여 하더라

14. 예수는 한 어린 나귀를 보고 타시니

15. 이는 기록된 바 시온 딸아 두려워하지 말라 보라 너의 왕이 나귀 새끼를 타고 오신다 함과 같더라

 

 


그 종려주일 다음 날 예수님은 무엇을 하셨을까?

 

마가복음 11장 11절은 이렇게 기록한다.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이르러 성전에 들어가사 모든 것을 둘러 보시고 때가 이미 저물매 열두 제자를 데리시고 베다니에 나가시니라"

 

종려주일에 예루살렘 성전을 둘러보신 예수님은 날이 저물자 제자들을 데리고 베다니로 가셨다. 그리고 그 다음날 예수님과 제자들은 베다니에서 나왔다.

 

마가복음 11장 12절. 이튿날 그들이 베다니에서 나왔을 때에 예수께서 시장하신지라

 

그리고 예수님과 제자들은 예루살렘에 들어갔다.

 

15절. 그들이 예루살렘에 들어가니라 예수께서 성전에 들어가사 성전 안에서 매매하는 자들을 내쫓으시며 돈 바꾸는 자들의 상과 비둘기 파는 자들의 의자를 둘러 엎으시며

16. 아무나 물건을 가지고 성전 안으로 지나다님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17. 이에 가르쳐 이르시되 기록된 바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 칭함을 받으리라고 하지 아니하였느냐 너희는 강도의 소굴을 만들었도다 하시매

18.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듣고 예수를 어떻게 죽일까 하고 꾀하니 이는 무리가 다 그의 교훈을 놀랍게 여기므로 그를 두려워함일러라

19. 그리고 날이 저물매 그들이 성 밖으로 나가더라


바로 종려주일 다음날인 월요일에 예수님은 제자들과 성전에 들어가셔서 성전을 정화하시는 모습을 보여주셨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짐승으로 제사를 드린 상황에서, 먼곳에서 제사를 드리러 오는 이들에게는 제물이 될 짐승을 데리고 오는 것이 번거로운 일이었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돈만 들고 와서 성전 안에서 제물이 될 짐승을 돈 주고 사는 것.

 

당연히 성전 안에는 이윤을 남기려는 장사치들이 존재했고 여기에 제사장들도 그들에게 세를 받으면서 한 몫 단단히 챙겼을테니 결국 성전은 하나님을 만나고 기도하는 장소가 아니라 시장이 되어버린 것이다.

 

 

 

편안함과 돈벌이가 환상 궁합이 되어서 성전을 강도의 소굴로 만들어버렸으니 예수님께서 이를 엎으실 수 밖에 없는 것.

 

재미있는 것은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이런 예수님의 행동에 대해 예수님을 죽일 모의를 했다는 것이다. 결국 자신들의 주머니에 손해가 가니 사람의 목숨까지도 빼앗기 위해 저런 모습을 보이는 상황.

 

오늘날 한국 교회안에 이런 모습은 없을지? 교회가 아니라 대형상점이 되어버리고 교인들은 돈으로 예배조차 편안함을 추구하며, 소위 성직자라는 이들이 자신의 이득에 방해가 된다고 옳은 일 하는 사람들을 찍어내버리려는 모습. 성경을 보면서 그런 모습이 떠오르는 이유는 뭘까?

 

그러나 비단 한국교회의 모습을 바라보는 것으로 끝날 일은 아니다. 신자들은 각자 자신을 볼 필요가 있다. 오늘날 성전은 신자 각자의 몸이기도 하다. 성령님이 거하실 곳이기 때문이다.

 

고전3장 16.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  17.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 

 

오늘날 성령님이 거하실 성전인 나는 나 자신을 기도하는 집으로 만들고 있는지 아니면 욕망으로 가득 채워진 집으로 만들고 있는지 돌아보는 시간이면 어떨까?

 

 

 

 

화요일에 묵상해볼 본문

마가복음 1119~ 142

 

마가복음 11장 19절 매양 저물매 저희가 성밖으로 나가더라

 

소위 성전 정화사건을 일으키신 예수님은 저녁이 되자 예루살렘 성 밖으로 나가셨다.

 

20. 저희가 아침에 지나갈 때에 무화과나무가 뿌리로부터 마른 것을 보고 

 

20절은 다음날 아침이 되었음을 알려준다. 즉 화요일이 된 것이다.

 

예수님은 다시 예루살렘 성전에 들어가셔서 유대의 종교지도자들과 권세에 관해서 논하신다. 아무래도 성전의 장사하는 이들의 상을 엎으시는 예수님에게 종교지도자들은 니가 감히 뭔데 이런 짓을 하느냐? 라고 따져물었을 것이다.

 

그렇게 예수님께서는 종교지도자들의 논쟁에 맞써서 말씀을 하시고 성전 헌금함에 헌금을 하는 한 가난한 과부의 모습을 보셨다. 그리고 여러 부자들이 많은 돈을 넣는 것을 보셨다.

 

41. 예수께서 연보 궤를 대하여 앉으사 무리의 연보 궤에 돈 넣는 것을 보실쌔 여러 부자는 많이 넣는데 

42. 한 가난한 과부는 와서 두 렙돈 곧 한 고드란트를 넣는지라 


 

 

 

그때 과부가 넣었던 금액은 두 렙돈이라고 한다. 두 렙돈의 가치는 어느 정도일까?

 

한 고드란트라고도 하는 두 렙돈. 로마시대에 사용된 고드란트(콰드란스)는 192개가 1데나리온이었다. 1데나리온은 포도원 품꾼의 하루 임금에 해당했으니, 오늘날로 말하면 일용직 근로자의 하루 일당 정도라고 보면 될 것 같다. 참고로 서기관의 경우는 1주일에 12데나리온을 받았으니 그 당시에도 사무직이 더 높은 임금을 받는 세상.  참고로 1고드란트로 살 수 있는 건 석류 한개 혹은 포도송이정도. [각주:1]

 

그 일용직 근무자의 하루 일당의 192분의 1이 가난한 과부가 낼 수 있는 전부였다.

 

성경에서 과부와 고아, 객, 레위인 등은 도움을 받아야 할 대상들이었다.


신명기 14:29 너희 중에 분깃이나 기업이 없는 레위인과 네 성중에 우거하는 객과 및 고아와 과부들로 와서 먹어 배부르게 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의 손으로 하는 범사에 네게 축복을 주시리라  
 
신명기 16:11 너와 네 자녀와 노비와 네 성중에 거하는 레위인과 및 너희 중에 있는 객과 고아와 과부가 함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에서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즐거워할지니라 

 
신명기 16:14 절기를 지킬 때에는 너와 네 자녀와 노비와 네 성중에 거하는 레위인과 객과 고아와 과부가 함께 연락하되 

 
신명기 24:17 너는 객이나 고아의 송사를 억울하게 말며 과부의 옷을 전집하지 말라 

남녀평등시대라고는 하지만 여전히 남성의 월급이 전체적으로 볼 때 더 높은 성향을 보이는 등 여전히 남성이 사회적으로 나은 대우를 받고 있는 이 시대다.

 

그렇다면 과거에는 얼마나 더 했는지 알 수 있다. 그리고 예수시대 당시에 유대상황은 여성이 사회적 진출을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러니 남편을 잃은 여자가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은 남들의 도움이 아니면 생활이 힘들었다. 우리는 룻기에 나오는 나오미와 룻의 이야기를 통해서도 이를 잘 알 수가 있다.

 

그런 과부가 두 렙돈 곧 한 고드란트를 내는 것. 이것이 쉬운 일이었을까? 비록 일용직 근무자의 하루 일당의 192분의 1에 해당하는 금액이지만 그녀에게는 그것 하나가 전부였다.

 

44. 저희는 다 그 풍족한 중에서 넣었거니와 이 과부는 그 구차한 중에서 자기 모든 소유 곧 생활 비 전부를 넣었느니라 하셨더라 

 

한 노숙자가 누구의 긍휼로 적선받았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을 믿는 자로서 하나님의 은혜가 너무 감사해서 자신이 받은 그것을 자신을 위해 사용하지 않고 헌금함에 넣었다. 이 모습과 유사한 모습이 과부의 모습이 아니던가? 

 

하나님은 많은 돈을 넣는 것이 중요한게 아니라 그 마음을 중히 보신다.  오늘날 교회에 가진게 별로 없는 이들이 중직자가 되지 못하고 가진게 많은 이들이 중직자가 되는 어이없는 상황을 보게 된다.

 

사회에서 갑인 사람이 교회안에서도 갑인 모습. 그리고 사회에서 을인 사람이 교회안에서도 을인 모습이 된다면 그건 그 교회가 한참 잘못하는 모습이겠다. 가진것의 많고 적음이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마음의 많고 적음이 중요하겠다.

 

 

그런데 이런 과부의 모습에 비교가 되는 모습을 보이는 한 사람이 있었다. 바로 가롯유다였다.

 

마가복음 14장 10. 열 둘 중에 하나인 가룟 유다가 예수를 넘겨 주려고 대제사장들에게 가매 

11. 저희가 듣고 기뻐하여 돈을 주기로 약속하니 유다가 예수를 어떻게 넘겨 줄 기회를 찾더라 

 

가롯유다는 예수를 팔아넘기기로 작정한 것이다. 자신의 전부를 하나님께 드리고자 했던 한 과부와 하나님의 아들을 돈 받고 팔아넘기기로 했던 가롯유다. 공교롭게도 과부의 헌금과 가롯유다의 예수를 파는 모습은 같은 날 일어났다.

 

신자로서 어떠한 모습을 가지고 있을까? 오늘날 한국교회 내에서 주식회사 예수라는 냉소적인 말이 나오기도 한다. 바로 교인들 가운데 그리고 목회자들 가운데 예수를 팔아 장사하는 모습을 보이는 이들이 있다는 것이다.

 

교인 중에는 예수를 믿어 이 땅에서 땅땅거리며 잘 사려는 것에만 신앙의 목적이 있는 것처럼 행동하는 이들이 있다. (그리고 그걸 부추켜서 충성을 얻어내려는 목사들이 있다.) 또 어떤 교인은 교회안에서 형성된 인적네트워크를 통해서 자신이 하고 싶은 일에 도움을 받으려고 한다. 선거철만 되면 그렇게 예배를 드리러 오는 정치인들이 존재하는 상황도 이와 유사하다 하겠다.

 

목사는 어떤가? 일부 목사들 중에는 목사가 아니라 삯꾼으로 행동하는 이들이 있다. 이단이 할 짓을 하고 있으니 그런 목사에게 목사라는 타이틀을 붙여주면 너무 다른 분들에게 죄송하다. 그들은 삯꾼이라고 불러야하겠다.

 

물론 내가 아는 목사님들 중에서는 정말 이름없이 빛도 없이 수고하시는 훌륭한 분들이 상당히 많이 있다. 하지만 그런 삯꾼들이 있는 것도 엄연한 현실이다.

 

이렇게 주식회사 예수를 만들어서 팔아먹으려는 교인과 삯꾼들이 존재하니 가롯유다는 오늘날도 존재한다고 하겠다.

 

자신이 가진 전부를 넣었던 과부의 모습과 돈을 받고 예수를 팔아넘기는 가롯 유다의 모습. 오늘 나의 모습은 어떤지 생각해보는 건 어떨까?

 

 

요일에 묵상해볼 본문

요한복음 12장 1-8절

(정황상 수요일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명확하게 결론을 지을 수가 없어 보인다. 수요일은 옥합을 깨뜨려 예수님의 발을 씻긴 여인의 모습을 묵상해보는 것은 어떨까?)

 

분량이 너무 많아서 재미있는 성경이야기6. 고난주간동안 무슨 일이 있었을까? <1>은 여기에서 마치고 다음 회에 이어서 연재를 하겠다.

 

 https://story.kakao.com/ch/funbible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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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예수 시대의 생활품습, 미리암 파인버그 바머시. 바오로딸. 2006.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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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paulandsa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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